1부 1장
2학년 3반 (2)
교실 문이 열리자, 흩어져 있던 소리가 가라앉았다. 말을 멈추지 못한 몇몇의 목소리가 늦게 따라 줄어들었고, 의자를 밀던 소리도 한 박자 뒤에 멎었다.
들어온 사람은 압도적인 존재감도, 일부러 힘을 준 분위기도 없었지만, 흐트러지는 부분 또한 없었다.
멈추는 위치가 일정하고 정확했고, 교탁에 선 뒤의 시선은 길지 않게 교실을 한 번 훑었다. 짧은 시선이었는데도, 대충 넘기는 느낌은 아니었다.
한도하였다.
한도하는 별다른 인사 없이 교탁 앞에 섰다. 손을 올리기도 전에 전자 칠판 한쪽이 반응했고, 생활기록 화면이 접히듯 사라진 뒤 출결 목록이 위에서 아래로 조용히 내려왔다. 교실 오른편 패널에도 담임 인증 완료 표시가 짧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앉아라.」
이미 앉아 있던 애들까지도 괜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 늦게 의자를 당기던 몇 명이 급하게 자리를 맞췄고, 종이를 넘기던 손도 멈췄다.
화면에는 학생들의 이름이 하나씩 출력되어 흘러가고 있었다.
반 전체 명단이 익숙한 순서대로 지나갔다.
이서는 화면을 보고 있지 않았는데도, 어느 순간 시선이 그쪽으로 끌렸다.
그때 아주 짧게 한 번 목록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다른 아이들이 봤으면 그냥 넘어갔을 정도였다. 이서가 그것을 의식하려는 찰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내려갔다.
이서는 자기도 모르게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시선을 먼저 거둔 쪽은 자기였는지, 화면이었는지 애매했다.
출결이 끝나자 목록은 접히듯 사라졌고, 곧바로 다른 항목이 올라왔다.
학기 안내.
한도하는 화면을 한 번 훑고 나서 입을 열었다.
「2학년은 작년이랑 다르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느낌이었다.
「1학년은 적응 기간이었다. 사고 안 나게 하는 게 우선이었고, 기준도 그쪽에 맞춰져 있었다.」
그는 말을 길게 끌지 않았다.
그 대신 필요한 말만 정확한 순서로 놓았다.
「근데 올해는 아니다.」
교실이 조금 더 조용해졌다.
「이제부터는 기록이 세부적으로 쌓인다. 생활기록 따로, 능력기록 따로. 수업, 실습, 평가 전부 누적된다. 3학년 진로 추천이나 기관 편입 자료로도 이어진다.」
앞줄 어디선가 펜 쥐는 소리가 났다. 아직 무언가 적을 정도는 아닐 텐데.
한도하는 그대로 말을 이었다.
「일반 학급은 그대로 유지한다. 대신 실습 비중이 늘어난다. 올해부터는 개인 단위보다 실습조 단위로 움직이는 시간이 더 많아질 거다. 실제 평가는 그쪽 기록이 더 크게 남는다.」
이번에는 반응이 더 분명했다.
앞쪽은 여전히 조용했지만, 뒤쪽에서는 누가 자세를 고쳐 앉았고, 다른 누군가는 펜을 돌리던 손을 멈췄다.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애 하나는 괜히 공책을 펼쳐 놓고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이서는 시선을 내린 채 듣고 있었다.
실습조 얘기가 나오는 순간부터, 귀가 다른 말보다 먼저 그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미리 말해 두는데.」
한도하가 말을 잠깐 끊었다.
「출력 높은 게 전부인 시기는 작년에 끝났다.」
그 한 문장에 몇몇 표정이 바로 움직였다.
아쉬워하는 티를 숨긴다고 숨긴 얼굴들이었지만, 순간적으로 굳는 쪽은 어쩔 수 없었다. 반대로 대놓고 안도하는 표정도 없었다.
「올해는 정밀도, 지속성, 안정성, 회수율까지 같이 본다.」
이서는 그 단어에서 한 번 걸렸다.
회수율.
이서뿐만 아니라 이 교실의 학생들에게도 익숙한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교실 안에서, 한도하가 그걸 기준으로 꺼내는 건 조금 달랐다. 단어가 아니라 기록 항목처럼 들렸다.
「높아도 무너질 때 회수 못 하면 의미 없다.」
한도하의 말이 이어졌다.
「한 번 크게 터지는 것보다, 무너졌을 때 얼마나 안정적으로 돌아오는지가 더 중요하다.」
뒤쪽에서 아주 낮게 누군가가 숨을 들이켰다. 누군가는 다리를 풀었고, 누군가는 괜히 물병 뚜껑을 만지작거렸다. 작은 움직임뿐인데도 분위기가 바뀌는 건 분명했다.
「그럼 질문.」
앞줄에서 손이 올라왔다.
「선생님, 실습조는 오늘 바로 나옵니까?」
「오늘 안에 공지한다.」
대답은 짧았다.
「하교 전까진 올라갈 거다. 공지 전까지 괜한 추측으로 분위기 흐리지 말고.」
그 말을 듣자 교실 공기가 다시 한 번 가라앉았다.
다들 이미 그 얘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처럼 조용해졌다.
그때 윤가온이 손을 들었다.
「안정성이 우선이면, 출력 높은 쪽이 무조건 유리한 건 아니네요?」
말투는 가벼웠지만 질문 자체는 가볍지 않았다.
한도하는 가온의 눈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유리한 건 맞다.」
「근데 유지 못 하면 의미 없지. 무너질 때 회수 못 하면, 그게 그대로 기록이 된다는 뜻이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설명은 충분했다.
가온은 입꼬리를 아주 조금 올렸다.
「아… 그럼 더 재미있어지겠네.」
혼잣말처럼 흘린 말이었지만, 주변 몇 명은 분명히 들은 얼굴이었다. 뒤쪽에서 누가 짧게 웃었고, 바로 옆에서 「야」 하고 낮게 제지하는 소리가 붙었다.
「그럼 결국 안정성 싸움이야.」
「출력만 세다고 되는 게 아니고…」
「그래도 높은 쪽이 유리하긴 하다는 거잖아.」
「조용히 좀 해.」
낮은 소리들이 짧게 퍼졌다가 가라앉았다.
한도하는 그 정도 웅성거림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 대신 다음 질문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듯 한 번 교실을 훑었다.
다른 학생이 손을 들었다.
「회수율은 어떤 방식으로 판정합니까?」
질문이 점점 세부적인 기준으로 넘어가자, 이서는 잠깐 집중이 흐려지는 걸 느꼈다.
연주 쪽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아주 짧게 났다. 연주는 아까부터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질문이 나올 때마다 그 내용들을 부지런히 받아적고 있었다.
한도하는 바로 답했다.
「단일 수치로 보진 않을 거다. 잔류량, 회복 시간, 재현성, 사고 났을 때 얼마나 안정적으로 제어되는지까지 같이 본다.」
이서는 무릎 위에 올려 둔 손가락을 살짝 말아 쥐었다.
회수.
잔류량.
회복 시간.
안정성.
자기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넘기기엔, 가까운 단어들이었다.
한도하는 화면을 한 번 넘겼다.
이번에는 규정 항목이 떴다.
능력 무단 발현 금지.
미등록 물질 반입 금지.
실습구역 외 변형 행위 제한.
기록실 및 폐쇄 자료 구역 무단 출입 금지.
누구나 아는 말들인데도, 교실 안은 다시 한 번 조용해졌다. 다들 무언가 떠올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올해 규정은 이걸 기준으로 간다.」
한도하가 말했다.
「실습조 이동이 많아지는 만큼, 허용 구역이랑 제한 구역 구분도 더 엄격하게 적용된다. 그리고 자기 기록이라고 해서 전부 바로 열람되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경우 면담 먼저 들어간다.」
누군가 손을 들 듯하다가 멈췄다.
묻고 싶은 건 있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다고 판단한 얼굴이었다.
한도하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그 짧은 정적 사이, 이서는 계속해서 숨이 조금 답답해지는 걸 느꼈다.
기록.
면담.
열람 제한.
말만 놓고 보면 이 반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는데도, 이서에게는 더 크게 다가왔다.
한도하는 단말기를 내려놓고 교실을 한 번 둘러봤다.
앞줄, 가운데 줄, 창가, 뒤쪽.
길게 보는 곳은 없었다. 그런데도 허투루 넘어가는 사람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서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지도, 피하려 하지도 못했다.
정확히는, 마주쳤다고 생각했을 때쯤 이미 한도하의 시선은 지나가고 있었다. 다만 그 전에 아주 잠깐, 자신 쪽에서 한 번 더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남았다. 아까 출결 화면이 멈췄을 때와 비슷한 종류의 짧음이었다.
곧바로 시선은 가온 쪽으로 옮겨갔고, 다시 반 전체로 풀렸다.
「다른 질문 없으면 여기까지 하겠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바로 손을 들지 않았다.
질문이 없는 게 아니라, 지금은 묻지 않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는 정적 같았다.
한도하는 마지막으로 화면을 접었다.
「실습조 배정은 오늘 하교 전에 공지한다. 그 전까진 수업에 집중해.」
말은 그렇게 끝났다.
한도하가 교탁에서 한 발 물러나자, 바로 누군가 숨을 내쉬는 소리가 났다.
교실을 나간 뒤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닫혀 있던 필통이 열렸고, 낮게 억눌러 둔 말들이 여기저기서 동시에 터졌다.
「야, 오늘이래.」
「진짜 오늘이냐…」
「A조 가면 빡세겠는데.」
「난 그냥 무난한 데면 좋겠는데.」
「그게 네 마음대로 되냐.」
누군가는 기대하는 얼굴이었고,
누군가는 괜히 태연한 척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이미 자기 위치를 짐작하고 있는 것처럼 조용했다.
가온은 옆자리 쪽에서 누가 말을 붙이자 별 힘 들이지 않고 대꾸했다. 평소 하던 말을 그냥 이어 받는 것 같은 태도였는데, 묘하게 그 주변 공기만 덜 무거워 보였다.
반대로 연주는 아직도 공책 위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방금 들은 말들을 정리하는 건지, 아니면 그 안에서 다른 의미를 읽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보다 그 너머의 의도를 더 신경 쓰는 쪽처럼 보였다.
같은 교실 안인데도, 누구는 이미 자기 리듬이 있었고 누구는 리듬보다 규칙을 먼저 붙잡고 있었다.
자신은 그 어디에도 정확히 끼지 못한다는 감각.
이서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같은 교실인데, 조금 더 좁아진 느낌이었다.
자리 자체가 바뀐 건 아닌데, 어디에 앉아 있는지가 더 선명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생각보다 불편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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